문화소비권력
이미지에 소비되길 열망하는, 이미지가 권력이 되는 시대
나와 내 페르소나
Y2K란 제목의 70~90년대 영화사로 이미지와 소비사회에 대해 끼워 맞춰가며 우리가 어떻게 이미지에 열망하고 열광하게 되었고, 그것이 영화에 어떻게 뻗어나갔는지에 대한 45분 짜리 영상을 보았다. 대략적으로 이미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파이트클럽에서 현대인의 껍데기를 가지고 타일러 더든과 같은 폭력적인 내면을 가지고 있고, 이케아에서의 소비로 이미지를 쌓아 잠시나마 잊길 원하거나. 아메리칸 사이코처럼 이미 완벽한 이미지를 갖춰뒀기에 내면의 본성에서 치유받지 못한다거나, 혹은 트루먼 쇼처럼 세상의 전부가 이미지고 미디어이며 소비인 그런 맥락에서(그 외 매트릭스, 리플리 등등등) 이미지에 굳건한 사회가 되었고, 이미지를 개인이 구축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소비이며, 마이클 잭슨과 커트 코베인이 그런 이미지의 개념에 저항했지만, 마이클의 경우 이미지에 붕괴되어버리고, 커트의 저항이 그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버린다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 이미지를 원하고, 사회적으로 ‘멋진’ 페르소나를 갖길 희망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공허함을 알기에 나를 가꿔 내가 원하는 나와 실제의 나, 현실의 나. 이 세 개의 나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고 부단히 고민하고 있다.
지금 나는 흑백이 가장 잘어울리는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의 2011년 라디오를 듣고 있다. 사카모토의 이미지를 보고, 그 미감에 혹해 듣고 있다. 동시에 사카모토의 말투와 목소리에서 여지 없이 평범하고 조곤조곤한 말투의 일본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내가 갖고 있던 사카모토 류이치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혔다. 어떤 거장의 이미지에서 오는 카리스마있고 묵직한 저음을 기대했달까. 바로 그 점에서 어느 누구도 이미지라는 사회적 개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체감했다.

'대' 취향의 시대
요새 키워드로 뜨는 ‘취향’은 돈이 되고 멋이 되는 트렌드가 되었다. 그것은 ‘이미지’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지’만큼 인류의 사회적 개념에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문화소비권력이다. 요새 사람의 그 대표적인 예가 ‘이동진’같다. 그 사람은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 말고 영화 제작에 관한 일은 없다. 영화를 찍은 적이 없는 사람이 영화에 대해 평론의 거장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동진 평론가와 파이아키아 채널을 싫어하는것은 아니다.)

취향의 사회적 지위화
부르디외의 관점에서 취향은 개인적 기호만이 아니라 교육, 계급, 경험을 나타내는 ‘문화자본’이라고 한다. 오늘날에는 고급예술만 아는 것보다는, 남보다 먼저 발견하는 능력, 여러 장르를 폭넓게 이해하는 능력, 작품의 맥락과 제작자를 설명하는 능력, 자신의 취향을 세련되게 큐레이션하는 능력 등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전 세대의 ‘고급문화 VS 대중문화’에서 ‘발견·해석·큐레이션 능력’의 차이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대중적인 작품보다 독립영화를 좋아한다.”
“유명해지기 전부터 이 가수를 알고 있었다.”
“그 작품은 재미는 있지만 예술성은 부족하다.”
“나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본다.”
“유행을 따라가는 소비는 하지 않는다.”
이것이 부르디외가 말하는 구별짓기의 예시로 보인다. 부르디외의 대표저서 '구별 짓기'가 최초로 발행된 해가 1979년이다. 플랫폼의 노출과 조회수 등의 문화자본 독식과 새로운 문화 중개자인 '인플루언서'와 '알고리즘'. 취향에 스스로를 잡아먹히는, 알고리즘이 인간의 Taste를 필터링, 분석, 그룹화하는 초개인화의 시대가 왔다. 나는 무엇을 만들어야하나 고민이 깊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