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hilism 666666 - 1

Nihilism 666666

Nihilism 666666

Making Note

1번과 3번은 동일한 구조를 가지며, 2번도 동일한 의미를 품고 있다. 그 의미는 '표적'이다. 나아지고자 의미를 추구하고, 가치를 지향하지만, 그것은 만들어진 '6'이다. 최고점이 '6'이며, 최저점 역시 '6'이다. 표적 바깥을 쏘아도 그것 역시 '6'이다. 6점을 벗어날 수 없다. 0점도 불가능하고, 10점도, 100점도 불가능하다. 그 시스템을 벗어날 수 없음의 표방이 '6'과 표적이다. 4번은 조금 다르지만, 같은 의미를 공유한다. 우리가 가르침 받고, 가치라 여기고 귀담아 듣는 내용 역시, '6'이다. 그것을 Dieter Rams의 스피커 타공 구조를 모방해 '6'을 배치했다. 서체는 Helvetica Neue를 사용했으며, 1과 3번은 주술적으로 보이도록 더 집착이 느껴지게끔 배치에 유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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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에서는 1+2+3인 완전수로 조화와 자기 완결성을 상징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육합·육호 등을 통한 우주의 전체성과 변화의 질서를 상징한다. 불교에서는 육도윤회·육근·육바라밀처럼 고통의 순환과 해탈의 방법을 상징한다. 유대교·기독교에서는 6일간의 창조와 엿새째 되던 날 창조된 인간으로, 노동·인간성·완성 직전의 상태를 상징한다. 7이란 신적 완성 직전의 수로 6은 불완전성이되며, 666에서는 그 불완전성이 극대화되어 짐승·세속·권력·타락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이슬람에선 6신조와 6단계의 창조를 통해 신앙과 창조 질서에 연결되기도 하며, 육각형과 벌집 구조에서는 안정성·효율성·기하학적 균형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처럼, 6은 득과 실이, 저주와 축복이, 완결과 미결이 병존하는 숫자이다. 이는, Context적 관점에 따라 그 개념이 스위칭된다. '6'은 개인의 관점이다. 어느 누구도 본인이 사회적 동물인 이상, 이 Context에서 벗어날 수 없다. '6'은 당신의 Context와 시점, 문화, 관점이다. '6'의 의미는 Context별로 다르다. 그렇기에 '6'의 의미는 Context의 의미 부여이다. 그렇기에 동시에 무의미하다.

실존적 허무주의

무력함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다가오는 사건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바꿀 수도 없음이다. 어찌할 수 없음을 어찌하려고 함이다. 내 삶이 주체적이라는 믿음의 와해이다. 실존적 허무주의는 인간의 삶에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고 본다. 의미가 전혀 불가능하다는 뜻이라기보다, 우리가 믿는 의미가 세계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것임을 강조한다. 고로, '6'이 무의미를 의심함이 곧 허무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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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주의 개념 개요에 항상 등장하는 시지포스의 형벌

Nihilism 666666

Making Note

1번과 3번은 동일한 구조를 가지며, 2번도 동일한 의미를 품고 있다. 그 의미는 '표적'이다. 나아지고자 의미를 추구하고, 가치를 지향하지만, 그것은 만들어진 '6'이다. 최고점이 '6'이며, 최저점 역시 '6'이다. 표적 바깥을 쏘아도 그것 역시 '6'이다. 6점을 벗어날 수 없다. 0점도 불가능하고, 10점도, 100점도 불가능하다. 그 시스템을 벗어날 수 없음의 표방이 '6'과 표적이다. 4번은 조금 다르지만, 같은 의미를 공유한다. 우리가 가르침 받고, 가치라 여기고 귀담아 듣는 내용 역시, '6'이다. 그것을 Dieter Rams의 스피커 타공 구조를 모방해 '6'을 배치했다. 서체는 Helvetica Neue를 사용했으며, 1과 3번은 주술적으로 보이도록 더 집착이 느껴지게끔 배치에 유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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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에서는 1+2+3인 완전수로 조화와 자기 완결성을 상징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육합·육호 등을 통한 우주의 전체성과 변화의 질서를 상징한다. 불교에서는 육도윤회·육근·육바라밀처럼 고통의 순환과 해탈의 방법을 상징한다. 유대교·기독교에서는 6일간의 창조와 엿새째 되던 날 창조된 인간으로, 노동·인간성·완성 직전의 상태를 상징한다. 7이란 신적 완성 직전의 수로 6은 불완전성이되며, 666에서는 그 불완전성이 극대화되어 짐승·세속·권력·타락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이슬람에선 6신조와 6단계의 창조를 통해 신앙과 창조 질서에 연결되기도 하며, 육각형과 벌집 구조에서는 안정성·효율성·기하학적 균형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처럼, 6은 득과 실이, 저주와 축복이, 완결과 미결이 병존하는 숫자이다. 이는, Context적 관점에 따라 그 개념이 스위칭된다. '6'은 개인의 관점이다. 어느 누구도 본인이 사회적 동물인 이상, 이 Context에서 벗어날 수 없다. '6'은 당신의 Context와 시점, 문화, 관점이다. '6'의 의미는 Context별로 다르다. 그렇기에 '6'의 의미는 Context의 의미 부여이다. 그렇기에 동시에 무의미하다.


실존적 허무주의

무력함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다가오는 사건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바꿀 수도 없음이다. 어찌할 수 없음을 어찌하려고 함이다. 내 삶이 주체적이라는 믿음의 와해이다. 실존적 허무주의는 인간의 삶에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고 본다. 의미가 전혀 불가능하다는 뜻이라기보다, 우리가 믿는 의미가 세계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것임을 강조한다. 고로, '6'이 무의미를 의심함이 곧 허무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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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주의 개념 개요에 항상 등장하는 시지포스의 형벌

AI가 사용되지 않은 작품입니다.